
필자: 이하준
16살 청소년.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구 학교에서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다. 21대 대통령 선거 토론회를 우연히 시청하게 된 계기로 2025년 정의당에 입당하였으며 현재 정의당 경남도당 청소년 국장,정의당 청소년위원회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요즘 정치권에서 ‘청소년’ 하면 학생인권조례로 시끄럽다. 충남도의회에서는 원래 존재하던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고, 서울에서도 조례 존치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여기에 최근 일부 교권 침해 사례와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학생 인권이 과도하게 보호되고 있다”라는 인식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는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경남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학교를 다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던 2024년부터의 기록이다.

입학 첫날 마주한 강제 서약
4년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중학교 지망 서류를 받았다. 친구들이 많이 가는 집 근처 큰 공립 중학교를 원했으나, 결과는 4순위로 적어두었던 이름도 몰랐던 학교로 배정되었다. 친구들과 모두 헤어져야 했던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입학 후 신입생으로서 처음 마주한 것은 ‘명예서약식’이라는 이름의 강제 서약이었다. 당시에는 중학생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고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서약의 내용은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킬 것을 다짐한다”라는 것이었다. 이는 개신교 교회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순결 서약식’의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당연한 줄 알았던 일상화된 폭력과 폭언
그 뒤로 목도한 것은 교사들의 일상적인 폭언과 폭행이었다. 반 전체를 대상으로 수 시간씩 남겨 화풀이하는 것은 물론, 인격 모독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고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 하루는 종례 시간에 담임 교사가 들어오더니, 교실 뒷문이 지속적으로 파손된다며 고성과 함께 교탁 위의 물건을 집어던졌다. 무섭다는 감정밖에 느낄 수 없었고 저항할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었다. 또 어느 날은 청소 상태를 문제 삼으며 학생의 책걸상과 쓰레기통을 집어던져 내용물을 다시 청소하게 했다. 지금 돌아보면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지만, 당시 나와 친구들은 응당 우리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수 시간씩 남겨져 “너희 같은 애들은 처음 본다”, “어떻게 이런 애들이 들어왔냐”라는 말을 들었다. 세뇌에 가까운 가스라이팅을 매일 받다 보니, 누구라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드럼스틱으로 머리 맞고 머리 위로 의자 들었다
그러다 한 번은 교사가 아침에 거두어간 핸드폰을 갑자기 나눠주며 학교 이전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에 참여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찬성 투표를 하라며 20분 동안 강요를 시작했다. 그것이 학교와 재단이 원하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설문조사를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핸드폰 필름 뒤에서 평소처럼 찬성을 누르고 침묵할 것인지, 반대를 눌러 목소리를 낼 것인지 선택할 기회가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반대 투표를 했다. 교사는 결과를 보더니 반대를 누른 한 명을 향해 온갖 비난과 비아냥거림을 퍼부었고, 반대표를 누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요구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손을 들 용기는 나지 않았다. 교사는 “반대표를 누른 한 명은 분명 남의 고통을 보며 낄낄거리는 놈일 것이다”라는 막말을 던졌다. 당시 N고등학교 진학을 희망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 이익보다 자유를 선택했다.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예체능 시간에도 인권 침해는 계속되었다. 떠들면 얼차려부터 머리 위로 의자 들기, 그리고 드럼스틱으로 머리를 맞기도 했다. 교사들은 뺨을 큰 소리가 나게 때리는 등 다양한 체벌을 자행했다. 이것 일상적인 체벌이었다.
은폐된 학교폭력과 무력화된 법
교사들의 불법이 이 정도이다 보니 국가가 정한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1학년 내내 강도 높은 학교폭력을 당했다. 1학년 말, 나를 비롯한 학우 4명이 1년간의 학폭을 견디다 못해 가해자를 신고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도, 면담도 없었다. 몇 주 뒤 돌아온 것은 “너희 말은 잘 알겠으나 높으신 분들이 일이 커지기를 원치 않으셔서 어쩔 수 없다”라는 담임 교사의 차가운 한마디뿐이었다. 처벌도, 사과 한마디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아픔은 ‘없던 일’이 되었다. 금품 갈취와 지속적인 따돌림이 있어 법적으로 정식 학폭위 심의를 받아야 했으나, 학교는 학교 자체 해결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 자체 해결조차 서류로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맹목적 종교 강요
몇 달에 한 번, 그리고 한 주에 한 번씩 교목과 외부 교회 목사가 진행하는 종교 수업이 있었다. 하루는 외부 목사가 진행하는 수업에서 “미국 청교도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구원했다”라는 내용이 나왔다. 청교도인들이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학살했던 역사를 왜곡하고 있었다. 몇 주 뒤 그 목사는 “요즘 동성애 문제도 심각한데…”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하신 말씀은 동성애자들을 차별하신 겁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외쳤다. 답변이나 사과는 받지 못했지만, 더 이상의 차별 발언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교에서 우리 반만 종교 수업 시간에 바닥에 앉혔다. 학급 임원으로서 이러한 차별을 두고 볼 수 없어, 친구들에게 아예 누워서 수업을 거부하자고 제안했다. 많은 친구들이 동참해 주었고 단상 앞에서 항의한 끝에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은 1순위가 아닌 3~4순위, 심하게는 21순위로 적어 내어 원치 않게 튕겨 온 학생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불교인, 무종교인 등 타 종교나 비종교인이 많았고, 강제적인 종교 수업에 불만을 느낀 학생도 많았다. 교장과 교목, 교사들을 찾아가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시정을 부탁했다. 2학년 말, 선택권이 없는 강제 종교 수업은 위헌이라며 시정을 건의했을 때 돌아온 답은 “그런 식으로 반항적이면 사랑받지 못한다”라는 모욕과 비아냥이었다. 타 종교를 가진 친구가 기도가 불편하다고 하여 함께 교장실을 찾아갔을 때도 “안 된다”라는 거절뿐이었다. 친구에게 “앞으로 바뀔 거다, 희망을 가져보자”라고밖에 말해줄 수 없어 미안했다. 요즘 신입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7시 하교, 목을 조르거나 발로 차는 등 학생인권 침해는 사라지기는커녕 더 심해지는 듯하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학교에서의 3년
당신은 방금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 중학교에서의 3년을 경험했다. 이것은 단순히 한 명의 개인이 겪은 일에 불과하며, 빠진 부분도 많다.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는 누구나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뉴스에 나오는 모습이 학교의 전부는 아니다. 교권 추락만 있는 것도 아니고, ‘무소불위의 불량 청소년’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 학교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고통과 눈물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학생 인권을 외치는 우리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기를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