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손잡고 기대어 함께 꽃피우는 인권”
“포기 할 수 없는 인권!” “손잡고 꽃 피울 인권”이라는 슬로건이 26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강당에 걸렸다. 제11회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의 날’ 기념식 현장이다. 하지만 행사장의 슬로건과는 달리, 이번 행사가 열리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학생들의 축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정치권의 외압 논란이 행사 직전까지 거세게 몰아쳤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선 학생인권조례
이번 기념식을 둘러싼 날 선 대립의 이면에는 학생인권조례 사수를 둘러싼 교육청과 시의회의 전면전이 자리 잡고 있다. 2012년 제정된 서울 학생인권의 날은 학생이 한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는 조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의회가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가결했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보수 성향의 개신교 단체들도 학생인권조례가 에이즈를 양산하고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해당 조례안의 폐지에 힘을 실었다. 해당 조례는 지난해 6월 서울시의회에서 폐지 된 바 있다. 그러나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며 효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의회가 대법원의 본안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도 폐지안을 또 다시, 두 번 가결한 것이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이에 불복해 시의회의 폐지 결정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며 조례 유지를 위한 대응에 나섰다. 이번 기념식은 조례의 운명이 법원의 판단에 맡겨진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치러진 셈이다. 조례를 끝내 폐지하려는 시의회와, 법적 절차를 동원해 인권의 보루를 지키려는 교육청의 갈등이 기념식 장소 문제로까지 번진 것이다.
“학생인권 기념 행사를 하려면 우리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게 맞지 않냐”… 시의회, 행사 장소 변경 압박
행사 개최 사흘 전, 국민의힘 소속 일부 서울시의원들이 교육청에 행사 장소 변경을 종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해당 의원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이미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학생인권 기념 행사를 하려면 우리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게 맞지 않냐 ” “의회 근처에서 학생인권 기념식을 여는 것이 부적절하다” 며 압력을 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육계와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특히 행사 전날인 25일, 시민 서울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공대위는 긴급 성명을 통해 이를 강력히 규탄했다. 이들은 “서울시의원들이 조례 폐지 시도로도 모자라, 학생들이 직접 준비한 행사 장소까지 정치적 논리로 검열하려 한다”며, “학생인권이 정치인들의 허락을 받아야 기념할 수 있는 대상인가”라고 맹비난했다. 단체는 이번 사태를 “명백한 행정에 대한 부당 개입이자 직권남용”으로 규정했다. 시청 소유 시설을 정당하게 대여했음에도 ‘협치’라는 이름으로 장소 이전을 압박한 것은 사실상 ‘학생 통제’라는 지적이다.

논란 뚫고 피어난 학생들의 목소리
이러한 풍파 속에서도 기념식은 학생들과 교육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행사는 여러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제14기 학생참여단은 지난 1년간의 활동을 보고하며 현장의 생생한 인권 정책을 제안했고, 예룸예술학교의 축하 공연은 장내 분위기를 달궜다. 학생참여단이 함께한 ‘인권나무 만들기’ 퍼포먼스는 조례 폐지라는 위기 속에서도 학생들의 권리는 굳건히 뿌리내려야 한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통제 대상 아닌 권리 주체”… 학생들이 직접 쓴 기획안
이번 기념식은 준비 단계부터 학생들의 노력이 있었다. 기획에 참여한 학생참여단 위원 이나은 학생은 이음과의 인터뷰에서 “학생인권의 날은 우리가 ‘통제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임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날”이라며 “단순히 기념일을 넘어 학생인권이 왜 소중한지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특히 “주무관님 등 어른들의 의견보다 우리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과정에서 큰 뿌듯함을 느꼈다”고 덛붙였다.
학생참여단 위원 황수민 학생 역시 이음과의 인터뷰에서 “학생인권이 교과서 속 딱딱한 이론에 머물지 않고, ‘나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존중받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날이 되길 원했다”며 “학생은 보호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당당한 시민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전했다.
“조례는 사라져도 인권은 폐지 할 수 없다”… 학생들의 일침
학생들은 최근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와 그로 인한 불안감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안은 이내 당당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이나은 학생은 이음과의 인터뷰에서 “조례 폐지 소식을 듣고 10시 이후 학원 심야 교습 등 기본권마저 보호받지 못하게 될까 봐 많이 두려웠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나은 학생은 “이번 행사는 불안함을 용기로 바꾸는 시간”이라며 “조례는 사라질 수 있어도 학생의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외침”이라고 말했다.
시의회의 장소 변경 요구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졌다. 이나은 학생은 “우리를 ‘누군가 시켜서 움직이는 아이들’로 취급하는 어른들의 무례함에 상처받았다”면서도 “시의회는 장소는 바꿀 수 있어도 우리 스스로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뜨거운 진심까지는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황수민 학생은 이음과의 인터뷰에서 “준비 과정에서 장소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실 저희 학생들은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학생참여단이 이해하기로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배경에는 현재 서울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된 상태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장소가 어디냐보다 그 장소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이러한 갈등 과정 또한 우리 사회가 인권을 정착시켜 나가는 민주적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흔들림 없이 우리가 준비한 가치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고 전했다. 이번 제11회 학생인권의 날 행사는 정치적 외압이라는 거센 풍파를 겪었지만, 역설적으로 학생들 스스로가 ‘통제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임을 증명해내며 마무리되었다.

취재 – 전지민, 장효주, 윤지환, 안병석, 정연서 기자
사진 – 전지민 기자
글 – 장효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