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을 사전적 의미로 풀이해 보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모두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정의를 의식적으로 헤아리지 않고 다가오는 느낌만으로 판단하면 우리는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인권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벅차거나 웅장한 느낌을 받는데,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물음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어떤 이유에서 이토록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 우리 자신은 감탄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 물음은 시간을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해소된다. 500년 전에는 성직자와 귀족이 모든 권리를 독점하고 평민은 과도한 납세의 의무에 허덕이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아이러니가 펼쳐졌지만 누구도 한마디 내뱉을 수 없었다. 400년 전에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값을 매겨 거래하는 잔인한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졌다. 200년 전에는 시민들이 직접 들고 일어나 권리를 확대했지만 남성들, 그중에서도 많은 자산과 학식을 보유한 이들에 그쳤다. 150년 전에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합리화하며 무자비한 수탈과 차별을 일삼았다. 100년 전에는 여성들이 투표권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수없이 희생당했다. 50년 전에는 세계가 무고한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국익을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켜 끝없는 피해자를 낳았다. 그러던 중 발표한 세계 인권 선언으로 인해서 이 만행들에는 나름의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러나 인권 침해라는 단어는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교문 앞에서의 복장 검사가, 누군가에겐 사소한 규칙일지 몰라도 학생에겐 자기결정권의 침해일 수 있다. 학교 성적 공개가 누군가에겐 자극일지 몰라도 당사자에겐 인격권의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갈등의 실타래를 풀고, 학생과 교사 모두가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교육청 인권조사관이다. 조금은 생소하지만 그만큼 알아갈 가치가 있는 ‘인권 조사관’이라는 직업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교육청 인권센터의 김인식 조사관님을 찾았다.
인권조사관이 하는 일은 주로 어떤 게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서울시교육청의 인권조사관은 기본적으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학생인권옹호관을 보좌하여 학생 인권 상담과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 구제 조치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 인권에 대한 전문성을 토대로 학생 인권 증진을 위한 문화 조성을 비롯한 관련 사업들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인권 침해 사건들의 경우에는 조사를 진행하고 그에 따른 조치로써 시정이나 재발 방지를 위한 권고, 중재적 성격의 조치안들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 업무 근거 규범인 학생인권조례 관리 업무와 인권 문화 조성을 위해 필요한 업무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인권조사관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될 수 있나요?
직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언론이나 미디어 매체를 통해 알려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의 경우, 민간 또는 공공에서 ‘인권 보장’, ‘인권 침해 및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 구제 업무를 수행했던 경력자를 비정기 수시 채용(경력경쟁채용시험)으로 선발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관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보편적으로는 선발 과정에서 왜 인권조사관으로 근무하고자 하는지,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담아낸 응시 서류, 그리고 인권에 대한 이해와 조사 역량을 입증하는 면접 절차 등을 거치게 됩니다. 담당 업무나 채용 직위에 따라 다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적 지식 또는 변호사 등의 전문 자격증 등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으니 인권조사관으로 지원하고자 한다면 공고에서 자격 요건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인권조사관으로 임용되어 근무하는 동안에도, 관련 법령과 조사 기법, 면담 윤리 등을 포괄하는 전반에 대해 지속적 교육과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순간에도, 인권조사관이라는 직업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자리인지를 잊지 않아야 하겠죠.
맡으셨던 인권 침해 사례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을 선택한다면 무엇인가요?
정말 많은 사건과 관계인들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꿈에 나오는 일들도 다반사이고요. 그렇지만, 특정 개인들에 관한 사건을 제외하면, 일부 불건전한 사학에서 발생했던 중요 인권 침해 사건들이 크게 기억에 남습니다. 사건들을 다루면서 어려움과 황당함이 동시에 다가오는 일이 잦았습니다. 객관적으로 조사하는 데 어려움을 가하려 한다는 개인적 느낌들도 전혀 없었다고 하진 못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중대한 인권 침해가 적당히 무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다만, 업무 수행의 기본이 되는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비밀유지 책무가 있어 특정 사건을 언급하기는 어렵습니다. 개개인을 특정할 수 없는 선에서 말씀드리자면, 학생이 인권 침해 구제신청을 제기하면서 교사들의 인권도 함께 침해되고 있다고 알려왔던 사건이나,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학교의 생활지도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온 교사들의 진정사건을 다룰 때 보다 큰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이처럼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이 상충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를 위하고 향하는 확장의 가치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뜻깊고 감사했던 사건들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꾸짖고 탓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인권조사관 역할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활동 중이신데, 학생인권교육센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개인적으로, ‘학생인권교육센터는 학생과 교육 공동체 모두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일종의 NPC(Non-Proliferation Center)’ 이자, 합리적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구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신뢰로 유지될 수 있는 그런 기구, 행정기관을 믿어도 될지 모르겠다면서 주저하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진정으로 믿음을 구하는 전담 창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밖에 교직원이나 보호자들에게도 어떤 상황이 인권 침해인지 아닌지 고민이 될 때, 학교를 둘러싼 법이나 규정을 어떻게 적용해 운영할지 헷갈릴 때 안내를 도와주는 역할 또한 수행하고 있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인권조사관이 되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개인적으로 학창시절, 학교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학생회 활동을 하며 학칙 개정 운동을 벌였고, 개인적으로는 사회활동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러자 학교는 저의 학생회장 선거 입후보를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많이 열악했던 학교 안 학생 인권이나 자치 권한을 개선하자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그 문제는 언론에서 다루어졌고, 많은 사람의 도움과 국가인권위에서의 시정 권고도 있었지만, 결국 출마는 하지 못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겪었던 일들은 모든 학교에서,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친구들과 다짐하고 약속했던 것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러한 학교 문화를 바꾸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활동들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조례가 제정되고 교육청의 학생인권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심의하고 구제 조치를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오랜 시간 이런저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생활해 왔습니다. 주로 공공영역에서 청소년, 인권, 감사, 조사 등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기도 했고, 그 외에도 공공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일들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이 일들을 발판 삼아 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인권조사관으로서 여러 학생 인권 침해 사건들에 대한 조사와 중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인권조사관이라는 직업이 필요로 하는 적성이나 흥미는 무엇인가요?
모든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 이야기 속에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기관에서 일하는 인권조사관인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법이나 조례, 규정들 같은 규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있다면 더욱 좋겠죠. 그렇지만 사람들이 겪는 일, 사람들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감의 힘, 그러면서도 치우치지 않는 자신의 중심과 원칙이 아마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따금 사건 조사 과정에서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무언가를 끈기 있게 고민하고 찾아가는 일에 흥미를 가진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반드시 어떠한 적성이나 흥미를 요구하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최소한의 사명감을 가지고 직무 가운데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일상생활에서의 인권 침해의 사례에는 무엇이 있나요?
물리적 폭력이나 욕설 외에도 공개적 모욕이나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제한, 의견 제시를 이유로 한 불이익 등 다양한 침해와 차별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보았을 자유롭고 평등할 권리 외에도, 적정 수준의 생활 보장,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하고 행복할 권리도 인권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나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홈페이지에서 결정례 게시판에는 여러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한 결정문 또는 권고문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인권적 고민을 안게 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생활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넘어가는 다양한 인권 침해 상황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여학생은 치마를 입어야지”, “남자가 그것도 못 참아?” 같이 성에 따른 모습이나 행동 양식을 강요하는 모습, 남자는 앞번호, 여자는 뒷번호 같은 것도 성별에 따른 차별로 판단된 바 있습니다. 학교나 일상생활에서 위험한 구조물이 방치되어 있다면 경우나 수준에 따라서, 생명권, 안전권에 영향을 주는 침해일 수도 있고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이유로 누군가 부당하게 간섭하고, 불이익을 주거나 괴롭힌다면 이 역시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볼 소지가 높습니다. 학교나 도서관이 휠체어를 타고서는 들어갈 수 없다면 이 역시 장애인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수행평가나 시험성적 같은 개인정보를 교실 앞에 붙여두거나 공개적으로 호명하는 것도 인권 침해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물론, 불편한 상황 모두를, 침해적 요소가 있는 모든 상황을 무조건 인권 침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 당연하거나 생각지 못했던 일상 속 불편한 순간, 감정들을 한 번씩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인권조사관이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인권의 가치와 범주는 점점 넓어지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의 인권은 국가 혹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로울 권리로서의 인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시대 발전에 따라 건강하게 생활하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것도, 궁핍하지 않을 것도 인권적 권리로써 받아들여 졌습니다. 말 그대로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삶, 더 나은 미래를 함께 추구하는 연대의 권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권리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이 권리들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모두가 부당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렇듯 당연한 인권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면 자연히 보장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모두의 인권을 지키는 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답게, 서로가 존중받는 그런 세상에 관심이 있다면, 느리더라도 나에서 출발해서 세상을, 문화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고 지키는 일에 의미를 느낀다면, 인권조사관이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