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여미애 (YM고전읽기 대표)
소설창작론과 현대문학 비평, 철학사, 동서양 고전을 아우르는 인문학 연구자. 박사과정 2코스를 밟으며 오랜 기간 텍스트와 씨름해 왔다. 또한 대학원 시절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필자의 이력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학위나 수상이 아니다. 15년째 청소년과 나란히 앉아 고전을 함께 읽어온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강단과 현장을 동시에 걸어온 필자는, 어려운 것을 어렵게 통과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문해력의 위기라는 말이 넘쳐난다. 2026년, 우리는 역설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세대보다 많은 텍스트를 소비하면서, 어느 세대보다 깊이 읽지 못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숏폼 콘텐츠는 두 문장짜리 결론만을 달콤하게 제공한다. 그 사이 인문학은 고사 위기에 처했고, AI는 인간보다 빠르게 요약본을 뽑아낸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에게 어렵고 두꺼운 고전을 읽히는 일은 시대착오적 고집인가? 나는 강독 수업을 할 때마다 이 질문과 마주한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흔히 오래된 책, 유명한 책, 추천 목록에 오른 책이라 여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고전이란 읽을 때마다 다른 것을 발견하게 만드는 책이다. 독자가 성장할수록 텍스트도 함께 성장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책. 칼비노가 말했듯, 고전은 처음 읽는 경우에도 이미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주고, 다시 읽을 때는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한다. 그 구조 자체가 빽빽하고, 한 문장 한 문장에 의도가 퇴적되어 있다. 그래서 고전은 홀로 읽기 어렵다. 맥락이 없으면 표면만 보이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려보자. 이 책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동물들이 농장 주인을 몰아내고 서로 싸우는 이야기다. 그렇게 덮는 독자가 적지 않다. “동물과 인간의 갈등이요.”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그 독서는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낱낱이 알레고리로 직조되어 있다. 독재자 나폴레옹은 스탈린이며, 선동가 스퀼러는 소련의 선전 기구 전체를 형상화한다. 쫓겨난 스노볼은 트로츠키이고, 말 복서는 체제를 의심하지 않고 충성하다 도살장으로 보내지는 소련 노동계급의 비극적 표상이다. 오웰이 1945년 이 소설을 쓴 것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정치적 경고였으며, 실제로 영국 출판사들은 소련의 눈치를 보며 출판을 거절했다. 이 역사적 맥락을 알 때 비로소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문장이 단순한 역설이 아니라 권력이 언어를 어떻게 강탈하는가에 대한 서늘한 고발임을 이해한다. 그 문장 하나가, 오늘의 뉴스피드를 읽는 눈을 바꾼다.
이것이 고전 강독이 단순한 줄거리 확인과 다른 이유다. 대충 읽는 것과 사고하며 읽는 것의 차이는 속도가 아니라 저항의 유무에 있다. 텍스트에 저항하는 독자, 즉 “왜 이 단어를 골랐는가”, “이 침묵은 무엇을 감추는가”, “나의 현실과 이것은 어디서 만나는가”를 묻는 독자만이 고전이 숨겨둔 것을 꺼낼 수 있다. 그 저항의 훈련이 바로 강독이다.
AI 시대에 질문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질문은 진공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깊이 읽어본 사람만이 깊이 물을 수 있다. 알고리즘은 내가 이미 아는 것만을 더 빠르게 돌려주고, 요약 AI는 텍스트의 결론만을 납품한다. 그 환경 속에서 오직 고전만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쉽게 이해되지 않고, 한 문장을 두고 여러 해석이 충돌하며, 나의 편견을 되비춘다. 그 불편함이 사고의 근육을 기른다.
청소년기야말로 그 근육을 키워야 할 시간이다. 혼란의 시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시기에 고전은 인류가 동일한 혼란을 어떻게 통과했는가를 보여주는 지도다. 나폴레옹이 계명을 밤마다 고쳐 쓰는 장면에서, 청소년 독자는 자신의 삶에서 언어가 조작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감각이다. 세계를 읽는 감각. 그 감각은 피상적 독서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고전은 천천히, 저항하며, 곱씹어야 한다. 한 문장을 세 번 읽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이 보이는 순간, 독서는 소비가 아니라 대화가 된다. 수백 년을 건너온 목소리와 지금의 내가 마주 앉는 일. 그 대화를 시작한 청소년은, 어떤 알고리즘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