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생 독립언론 <이음>이 한 달 전 첫걸음을 뗐다. <이음>은 사회 전반과 교육 현장을 청소년의 시각으로 기록하고, 기성 매체가 담아내지 못하는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겠다는 포부로 모였다. 하지만 2호 발행을 마치기도 전에, <이음>은 감당하기 힘든 언론탄압과 집단린치 피해를 겪고 있다.
최근 <이음>이 서울시 교육감 행사에 축사를 보낸 일을 두고 외부의 비판이 거세다. 지난 11일 한 집회 현장에서는 본지의 활동을 두고 “가해자를 지지하는 2차 가해”라 규정하며 집단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투쟁 현장에 선 이들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그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이지만, 언론의 통상적인 공적 교류를 ‘가해’로 규정하며 낙인찍는 행태에는 깊은 유감을 표한다.
현재 <이음>의 일부 기자들은 무분별한 비난과 악의적인 댓글로 인해 불면증과 거식증을 겪는 등 일상 생활이 불가능 할 정도의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고자 하는 기자도 있다. 건강한 비판을 넘어선 인격 살인적 집단 가담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폭력이다. 청소년 기자를 자신들의 논리를 전파하는 ‘도구’나 ‘하부 조직’으로 간주하며, 대의에 반하는 보도를 ‘배신’이라 규정하는 순간 운동은 닫힌 체계로 침몰할 것이다.
정근식 교육감을 상찬하는 기성 언론의 보도에는 침묵하면서, 오직 청소년 언론의 의례적인 축사만을 문제 삼아 화력을 집중하는 행태는 참으로 참담하다.
사실관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음>은 특정 후보 한 사람의 행사에만 축사를 약속한 것이 아니다. 축사 및 패널 출연을 요청한 모든 후보의 부탁에 공평하게 응했다. 실제로 다른 후보의 출판기념회에도 편집장이 참석하여 <이음>의 신문을 들고 패널로 출연한 바 있다. 이는 신생 언론인 <이음>을 알리기 위한 활동이었을 뿐, 어느 한쪽에 대한 지지 표명이 아니였다.
누가 교육감에 당선되든 그는 서울 교육 정책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이자 <이음>이 마주해야 할 핵심 취재원이다. 정책의 방향을 묻고 현장의 문제를 질의하는 것은 청소년 언론의 기본적인 직무이다. 이러한 취재원과의 접점 확보를 특정 진영에 대한 편향으로 읽어내는 것은 언론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해석이다.
오히려 언론이 특정 진영의 논리에 갇혀 소통의 문을 닫아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독립언론으로서의 직무유기다. <이음>은 학교의 검열과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언론의 길을 택했다. 학교의 몽둥이를 피했더니 이제는 외부 정치 세력이 ‘운동의 대의’라는 가이드라인을 들고 우리를 가르치려 든다.
청소년 언론의 편집권은 오직 내부 구성원들의 숙의와 고유한 원칙 속에서만 결정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을 쓰는 언론사는 언론으로써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건 그냥 선전 도구에 불과하다. 언론이 아니다. 과거 군사 정권의 보도지침이나 광고 탄압, 혹은 독재 국가의 언론 통제 사례들은 모두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라는 이분법으로 언론의 자율성을 부정했다. <이음>에 쏟아지는 현재의 압력 또한 ‘대의에 반하면 배신’이라는 동일한 논리적 토양 위에 서 있다.
<이음>은 청소년 언론을 청소년 운동의 하위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언론은 모든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독립된 주체이다. 청소년 기자에게 운동의 언어를 그대로 받아 적는 속기사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언론을 탄압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음>은 정당의 지시를 받는 어린 병사가 아니다. 세상을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기록하는 독립된 기자이자 시민이다. <이음>은 앞으로도 수많은 취재원을 만날 것이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청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직시하며 독립언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집단적 린치를 멈추고, 청소년 언론인을 특정 운동의 ‘도구’로 보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음>은 펜을 든 독립된 언론사이다.

한 사람의 성북구 주민이자 민주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써, 성북구 청소년 언론 의 언론 활동과 그 일환으로 이뤄진 지극히 당연한 취재 활동, 그리고 그에 가해진 부당한 탄압에 맞서는 모든 자세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