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3월 13일 본회의 예정… 학생인권조례 폐지 의결 가능성 존재
10만명 서명에서 청소년들의 노숙노성까지… 15년의 지독한 투쟁
서울학생인권조례 운동은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운동’ 15년간 여러 시민들이 전개해온 투쟁

서울학생인권조례 15년 투쟁의 연대기
2026년 2월,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돈다. 2025년 12월 16일 서울시의회의 기습적인 폐지안 가결 이후, 서울학생인권조례는 다시 한번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9만 7천 명 시민의 서명으로 시작되어, 수 차례의 법적 다툼, 그리고 공대위의 열정적인 투쟁과 영하의 한파 속 청소년들의 노숙 농성으로 이어진 이 조례의 15년. 이는 한국 사회가 학생의 존엄을 인정하기 위해 치러온 지독한 투쟁의 기록이다. 정근식 서울교육감의 재의요구로 가까스로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가 3월 13일 예정된 시의회 본회의에서 폐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민사회의 투쟁으로 상정된 학생인권조례 (2010~2012)
조례의 뿌리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서울에서 드러난 이른바 오장풍 사건은 학교 체벌의 실상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교사가 학생의 복부를 발로 차는 폭력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던 현실은 많은 시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는 체벌이 관행처럼 이어지던 학교 문화의 구조적 문제였다. 당시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 학부모회(이하 서울평학)는 해당 학교 앞에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후폭풍은 거셌다. 며칠 동안 전화와 이메일이 수천 통씩 쏟아졌고, 언론과 온라인 여론은 연일 이어졌다. 서울평학 회원들의 참여가 공론을 형성했다. 이후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10만 명 서명 운동이 전개되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중심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가 그 주역이었다. 당시 학교는 체벌과 강제 보충수업, 엄격한 두발 규제가 일상인 공간이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이하 서울본부)>는 학생을 훈육의 대상이 아닌 현재를 사는 시민으로 정의하며 서울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했다.

청소년들은 두발 자유와 학생 자치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전교조 교사들과 시민사회도 공청회와 토론회, 의회 활동에 함께했다. 1년여간의 사투 끝에 이들은 주민발의 서명 요건 5만명을 충족시킨 9만 7,702명의 유효 서명을 확보했다. 이는 조례를 시민이 직접 초안을 만들고 서명을 통해 의회에 상정시킨 사례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학생·교사·시민이 함께 만든 연대의 결과였다.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은 체벌 전면 금지를 선언하며 조례 추진을 공식화했다. 서울시의회에서는 최홍이 교육위원장과 윤명화 시의원이 조례 통과를 이끌었다. 당시 서윤기, 김명신 의원은 시민과 청소년의 목소리를 의회로 연결했다. 반면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은 교권이 무너진다며 조례 폐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연대의 힘은 결국 조례를 탄생시켰다. 2012년 제정된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체벌 금지, 차별 금지, 표현의 자유와 참여권을 명시했다. 학생을 인권의 주체로 인정한 제도이다.
법정에서 지켜낸 학생인권조례 (2012~2022)

조례 공포는 새로운 투쟁의 시작이었다. 당시 이주호 장관이 이끄는 교육과학기술부는 조례가 교육감의 권한을 일탈했다며 대법원에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학교 현장에 학칙 개정 중단이라는 시정명령을 내리며 정면충돌했다. 이에 서울본부는 “교육 자치를 훼손하지 말라”며 거리 시위와 법적 대응으로 맞섰다. 이후 2013년 헌법재판소는 조례 공포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고, 이어 대법원 소송에서도 교육과학기술부가 패소하며 조례는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후 10년은 조례가 제도로 안착하는 시기였다. 학생인권옹호관이 설치되고 학생인권종합계획이 수립되었다. 보수 단체들은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 등을 문제 삼아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는 2019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해당 조항들이 합헌임을 확인하며 조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10년은 인권 단체들이 학교 현장에서 체벌을 몰아내고, 학생이 자신의 신체와 표현의 자유를 가질 권리를 상식으로 만든 투쟁의 시간이었다.

서울학생인권지키기공대위의 수호 투쟁 (2023~현재)

조례의 여론은 2023년 7월 서이초 사건을 기점으로 깨졌다. 교권 침해라는 사회적 공분 속에 보수 진영은 조례를 교권 추락의 주범으로 규정했다. 조례 폐지가 구체화되자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 학부모회, 참교육실현을위한 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 전교조 서울지부 등 여러 시민사회 단체가 소속된 <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결성되었다. 공대위는 무수한 피켓팅과 기자회견, 문화제, 농성을 벌이며 열정적으로 투쟁하였다. 이들은 “교권과 학생 인권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호소하며, 조례 폐지가 아닌 악성 민원 방지 대책과 교사의 생활지도권 보장을 요구했다. 또한 조례의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자 한 시도를 규탄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는 2024년 4월 26일, 의원 발의 형식을 빌려 1차 폐지안을 가결했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의 재의 요구와 대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조례는 간신히 숨을 이어갔지만, 폐지의 파고는 낮아지지 않았다.

청소년 노숙 노성의 16일, ‘또 다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2025.12)
2025년 말, 사태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시의회는 보류 중이던 주민 발의 폐지안을 기습 상정했다. 조례의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조례를 또 다시, 두 번 폐지한 것이다. 이때 청소년 당사자 조직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투쟁에 나섰다. 아수나로 활동가들은 서울시의회 정문 앞에서 영하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철야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첫날부터 중구청과 경찰의 강제 해산 시도가 이어졌고, 텐트가 철거되고 활동가들이 바닥에 밟히는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권리를 도둑맞지 않겠다’는 청소년들의 절규는 16일간 시의회 마당을 메웠다. 그러나 끝내 서울시의회는 25년 12월 16일에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본회의에서 가결했다.


금년 3월 13일 본회의 예정… 학생인권조례 폐지 가결 가능성 (2026)
25년 12월 16일, 시의회는 본회의에서 폐지안을 최종 가결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이에 불복해 재의요구를 행사하면서 조례는 가까스로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서울시의회가 2026년 3월 13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가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0년 주민발의에서 출발해 수차례의 위헌·무효 소송과 집행정지, 재의요구를 거쳐 이어져 온 15년의 투쟁. 학생인권조례는 지금 또 한 번 중대한 분기점 앞에 서 있다. 폐지가 현실화될지, 혹은 또다시 법적·정치적 공방 속에서 명맥을 이어가게 될지, 3월 13일 본회의는 그 향방을 가를 결정적 장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시작부터 위기까지 모두 담겨있고 잘 정리가 되어있네요. 이렇게 역사가 다사다난한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긋지긋해 구킴